• 202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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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동대지진=간토대지진

    관동대학살=간토대학살

    지역명을 한자음으로 하는지 일본어 발음으로 하는지에 따라 다르나, 내용은 같은 것으로 간토대학살의 역사적 진실과 조선인의 피해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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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토대학살 (관동대학살)

     

    간토대학살은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강점하고 있던 시기인 1923년 9월 1일에 일본 도쿄도 등을 포함한 간토(관동) 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하는데 이를 <간토대지진> 이라고 합니다.

    간토대지진 때 일본 도쿄 시가지의 40%가 초토화 됩니다.

    이 간토대지진으로 사회가 혼란한 상황을 틈타 차별과 편견으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거짓 정보를 만들어내면서 일본의 군, 경찰, 민간인이 조선인을 무차별적으로 대량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간토대학살> 입니다.

    아직도 일본정부에서는 사실 은폐와 부인 하고 있어 정확한 피해규모를 알수 없지만,

    희생자수가 적게는 6000명에서 많게는 몇만명까지 어림잡고 있는 형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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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인 (조선인) 구분

    • 조선식 이나 중국식 복장을 한 사람을 바로 살해
    • 외국인이 하기 어려운 발음을 시켜서 못하면 살해
    • (발음은 “十五円五十銭(15엔 50전)”(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이나 "大根(무)"(だいこん)
    • 이름의 성이 1자인 경우 조선인이나 중국인으로 보아 살해
    • 도쿄 출신이 아닌 지방 출신도 사투리를 해서 발음이 이상하다고 살해
    • 말 못하는 농아도 조선인으로 간주해 살해 (도쿄 농아학교 절반이 실종)
    • 하얀 옷 입은 사람은 조선이라고 해서 살해 (하얀 옷 입은 일본 해군장교도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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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토대학살  배경

     

    ① 1923년 도쿄도 일원의 간토 지방에 대지진 발생

    대지진으로 도시의 대다수가 파괴됨에 따라 민심과 사회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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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일본 내부성 계엄령 선포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고 나서야 계엄령을 선포하고 경찰서에 지역의 치안유지에 힘쓰라고 명령을 하달 합니다.

    ③ 내무서의 경찰서 하달 내용에 "조선인의 테러 등" 반영

    경찰서 문서에 "재난을 틈타 이득을 취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조선인 들이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 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일본 경찰에서는 "조선인 폭동" 은 실체가 없는 유언비어 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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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신문에 내용 확인 없이 거짓 기사로 선동

    처음 이 잘못된 내용이 일부 신문에 기재 되었는데 그 후 유언비어까지 더해서, 메이저 신문인 아시히 신문, 요미우리 신문 등 에서 기사화 합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조선인 (또는 중국인)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 약탈을 하여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 인데 대지진으로 인해 물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우물의 독과 대부분이 목조건물인 일본에서 방화는 일본인을 두려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대지진으로 인한 일본인들의 분노를 다른데로 유도하여 폭발하게 만든 비열한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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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일본인들의 조선인 대학살

    이미 일본인들은 기사의 내용이 진실이고 아니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지진으로 인한 정치적 어려움을 제3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유도를 당합니다.

    이때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만들어 불심검문을 통해 외국인 (특히 한국인)을 골라내어, 가차없이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때 조직된 자경단이 간토지방에서만 4000개가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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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⑥ 일본정부의 묵인과 사실 은폐

    일본정부는

    간토대학살이 일어 날수 있도록 유도를 하고, 

    간토대학살이 진행 중일때는 묵인을 하고,

    간토대학살이 일어난 후에는 은폐를 합니다.

     

     

    간토대학살  일본군경 개입 증거 및 은폐

     

    간토대학살의 일본군경의 개입 문서는 여기저기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사건 당시 일본정부는 간토대학살 당시 군인들의 가해는 숨기고 민간 자경단이 주도해서 발생한 것으로 꾸며내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게도 일본군이 자경단을 막아서 학살로 부터 조선인을 보호 했다는 자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 간토대학살 새 공문서 - YTN ]

     

     

    1) 의사 (국회의원)인 일본 육군 소장 쓰노다 고레시게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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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증언은 수없이 많으며 또한 여러 문서를 통해서도 나옵니다.

     

    2) '관동계엄사령부상보' 제3권에는 '진재 경비를 위해 병기를 사용한 사건조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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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은폐 증빙자료 - 구보노 시게지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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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내용 말고도 수많은 증언과 증거가 있는 상황에서도 일본은 거짓으로 은폐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영화 1923 간토대학살

     

    우리나라에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로 2024년 8월 15일에 개봉 되었습니다.

     

    조선인을 향한 대학살 101년간 과거를 부정한 일본정부...

    101년간 반성은 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는 일본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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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크게 3가지 주제를 보여 줍니다.

     

    1) 간토대학살이 얼마나 참혹하고 알려진 것 보다 더 규모가 거대한 참극 이었는가?

     

    2) 왜 일본정부는 100년 넘게 진실을 은폐하고 책임지지 않는가?

    그리고 이 현상이 현재 일본정부와 자민당의 우경화 현상과 이는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지?

    3) 일본 현지의 양심적 시민단체와 유각족들은 어떻게 대학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싸워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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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포스팅 하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용광로를 느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은 이미 이웃이 아니지만 지리적으로 이웃인 일본의 과거에 대한 반성부터 시작되어야 모든것을 풀수 있다는 것을 느껴 봅니다.